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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같은 두뇌를 만들려면 100년도 넘게 걸릴 것이다

by 한숨은 이제 그만 2020. 2. 24.

프랑스에서 같은 두뇌를 만들려면 100년도 넘게 걸릴 것이다

 

변호사 가문에서 태어나 대학교에서도 법학을 익혀 세무원으로 일했지만 관심이 있는 일이자 부업이기도 했던 과학 연구를 꾸준히 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질량 보존의 법칙'을 수립, '산소 기작의 연구'에 도움을 줬으며, '플로지스톤론'을 부정했습니다. 그가 이룬 것을 18세기의 '화학 혁명' 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과학 관련 공부를 통해 얻은 지식을 활용해 몰래 밀반입 하려는 물건과 국내 생산품을 섞어서 만든 담배를 분리해 진실을 밝히기도 했으며 자신의 농지에서 새로운 경작 방식을 도입하기도 하며, 세느 강의 수질 관련된 연구를 하기도 했어요. 바스티유 감옥 주변에 본인의 거처와 연구실을 따로 만들었으며 뒤에는 프랑스의 화약 국장에서 왕립 아카데미 이사가 되기도 해요.

 

 

 

앞에서도 말한 세무 공무원 생활로도 승승장구를 했는데, 그의 상사가 프랑스 동인도 회사의 총관으로 발령이 되어 그는 세금을 걷는 조합의 관리자가 되었다고 해요. 라부라지에는 어마어마한 연봉을 받았는데, 요즘 물가로 환산하면 200억 정도가 되었다고 해요. 이때 당시에 재밌는 에피소드도 있는데, 당시 미국 독립 전쟁으로 국가의 재정이 힘들어지자 세금 확보를 위해 파리를 둘러싸는 벽을 세워서 밀수를 막자는 주장이 그것인데요. 당시에는 비난을 받았지만, 생각해보면 본인의 질량 보존의 법칙과 연관이 있는 내용 같기도 합니다.

 

라부아지에가 사십대가 되고 나서는 오를레앙 주 의원으로 활약하기도 했어요. 그것에 맞춰 귀족들에게도 소득세를 걷자는 말을 하거나, 복기 기금 마련을 위한 준비를 하기도 하고, 파리 코뮌의 대표로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 뒤에 프랑스혁명이 터지게 되고 그의 운명을 바꾸는 사건이 생기게 됩니다.

 

초창기에는 혁명의 동조자로 인정을 받았지만, 뒤에 로베스 피에르의 자코뱅파가 정권을 장악하며, 외부 국가들의 압력 그리고 나라 내부의 혼란을 막기 위해 우리가 아는 공포정치를 시행하게 됩니다. 이때 라부아지에가 세금 징수원이라는 본인의 직업 때문에 안타깝게도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하게 돼요. 사후에 그에 대한 재평가가 꾸준히 이뤄지게 되며 지금의 이름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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