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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및 현대시에 엄청난 영향을 준 시인

by 한숨은 이제 그만 2020. 2. 25.

초현실주의 및 현대시에 엄청난 영향을 준 시인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는 1854년 벨기에 주변 프랑스 아르덴 주의 샤를빌(메지에르)라는 곳에서 출생했습니다. 그는 프레데릭 랭보, 비탈리 퀴프라는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는데 그들은 각각 보병 대위, 샤를빌의 부자 농사꾼 집안의 딸이였다고 하네요. 아버지는 방랑하는 사람의 특성이 있어서 결혼 초반에도 연대를 따라 움직이다가 가끔씩 집에 방문하는 수준이여서, 둘의 결혼 생활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고 해요. 또한 평소 카톨릭 교회를 다니던 비탈리와 전체적인 행동양식이 달랐다고 합니다. 결국 여섯 살때 아버지가 가출을 하면서 이들은 어머니의 손에 길러졌다고 하네요.

 

랭보 위엔 형 한명이 있고 밑으로는 두명의 여자 동생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들은 엄마의 손 아래 엄하게 카톨릭 관련 공부와 가정교육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때 그는 일곱 살때 샤를빌에 로사 학교에 가게 되며, 뒤에 우리나라의 중학교와 비슷한 중등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고 해요. 그는 학교를 다니는 내내 성적이 좋았던 사람이며 신앙심도 좋았다고 해요. 라틴어와 고전, 역사, 레토릭 등에서 다른 학생과는 다른 높은 성적을 보여줘서 관련 상도 다양하게 받았으며, 교장에게도 레토릭이 우월한 학생이라는 극찬을 한 도서를 따로 줄 정도였다고 하네요.

 

 

 

그는 어린 나이에도 라틴어 고서 혹은 시를 주목했는데, 본인만의 여러 방법으로 시를 분석하고 그 뒤에 본인이 직접 라틴어 시를 직접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것과 관련된 일화로 그는 로마의 유명한 시인인 베르길리우스에게 빠져서 그 관련된 시를 읽고 이를 외우는 것은 물론이고 주제나 쓰는법을 공부하거나 로마어와 번역어를 비교하는 일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 그에 가치관에 변화를 준 일이 벌어지는데요. 수사학을 가르치는 스물두살의 조르주 이장바르가 온 것입니다. 이 선생은 그의 시 관련된 텔런트를 금방 알아봅니다. 그는 랭보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하게 되는데요. 빅토르 위고, 테오도르 드 방빌, 루소 등의 시 등을 보여주며 시를 만드는데도 도움을 줍니다. 이때부터 그는 새로운 것에 눈을 뜨고 자신을 억압하던 모든 생활들에 대한 반항심이 생기게 되요.

 

1870년 무렵 선생이 학교를 간 뒤로 랭보는 고향을 떠나 파리에서 시를 쓰겠다는 일념 하에 일년 사이에 무려 3번이나 가출을 시도했다고 해요. 그 중 한번은 기차를 타기 위한 돈이 부족해 잡혀 유치장에 갇히기도 했는데, 앞서 말한 선생 이장바르의 지원으로 나오게 되기도 합니다. 또한 파리 코뮌에 들어가고자 했으나 안좋은 면을 보게 되어 다시 마을로 오게 됩니다.

 

 

 

1871년 자신의 시 세계관을 밝히는 편지를 각자 두 통 전달하게 되는데요. 견자의 편지라고 불리는 이것은 랭보가 생각하는 시인상과 시인의 책임에 대해 서술한 글입니다. 하나는 앞에서부터 계속 언급한 선생 이장바르, 그리고 친구인 폴 드메니에게 보냈다고 해요. 여기 써져 있는 글에 의하면 시인은 견자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이나 세계의 본질을 들여다볼줄 아는 사람이여야 되며, 그러기 위해선 개인의 인격을 형성하는 인습적인 개념, 혹은 모든 제약에서 탈피를 하고, 본인의 영혼을 인식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것 뿐만 아니라 신의 목소리를 대신 내는 사람으로써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현상이나 대상을 다른 식으로 관찰하며, 너머에 숨겨진 모습을 투시할줄 알아야 한다. 라는 말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를 위해선 감각을 착란시키고 이상한 영혼을 만드는 결론으로 가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 그는 여러 현상이나 감각들을 부수고 없애는데 그로 인한 질서가 없음이 그의 시 이론의 중심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 뒤로 학교 공부도 중단하고 본인만의 철학을 바탕으로 시를 쓰는데, 이때 취한 배, 앉아있는 사람들, 강탈당한 마음 등의 작품등을 썼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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